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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편리함
어떤 것이 편리하다는 것은 결국 그 자극이 뇌에서의 정보처리가 빠르다는 것이다.

뇌는 효율적인 기관이기 때문에 정보처리가 더 빠른 회로를 더 자주 사용하고, 자주 사용하는 회로는 더 넓어진다.

과학 기술의 발전에 따라 편리함은 더 늘어났고 늘어가는 편리함에 따라 이제 과거의 불편함으로 돌아가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되었다.

깨끗한 식수, 따뜻한 씻을 물, 깨끗한 그릇, 여벌 옷 없는 삶이 대한민국에 사는 대다수의 사람에게는 상상조차 불가능하다.

어떻게 보면 우리는 편리함의 감옥에 갇혀있다.

1. 편리함은 상대적 개념이다

불편함을 경험하지 못하고 자라난 우리들은 불편함으로 이동되는 것이 가장 큰 두려움이 되었다.

역사적으로 정말 많은 인간이 깨끗한 식수와 따뜻한 물을 가진 적이 없었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그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가진 삶도 지옥같은 삶으로 그려진다.

우리 뇌에서 삶의 질에 대한 기준의 메커니즘은 절대적이라기보다는 상대적이기 때문이다. 그 상대적인 편리함의 척도의 축이 가파르게 벌어진 현대인의 뇌 속에서는 전래없는 우월감과 박탈감의 폭풍우가 휘몰아치고 있다.

이런 시대에 필요한 것은 엘리베이터에 탑승하기 위해 아둥바둥 경쟁하는 것이 아니다. 그 세계관 안에서는 만족하고 평안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상대주의의 위계에서 벗어나게 해줄 무언가가 필요하다.

2. 평안함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디모데전서 6장 8절

생리적으로 필요한 것들이 채워진 지점에서 만족이 된다면 참 좋겠지만 잘 안 된다.

지극히 개인적인 차원에서 우리의 상대적 뇌를 절대적 사고하도록 바꾸고자 한다면 저항이 있을지언정 아주 불가능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사회를 이루어 사회에서 사는 이상 개인의 마인드만으로 주위의 지속적인 자극들과 압박들을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할 정도로 어려워 보인다. 그 사회의 규칙에 나의 생존이 이미 저당 잡혀있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서 불안으로부터 벗어난 장기적인 안정--평안을 얻는 것은 구조적으로 어렵다.
이 곳에 태어난 이상 우리는 움직이지 않으면 질식하는 상어처럼 계속 편리함을 향하여 올라가는 수 밖에 없다.

편리함을 넘어 평안함으로 가고자 한다면 나의 생존과 안전을 지켜줄, 사회의 흐름보다 더 큰 무언가가 필요하다.
이런 것을 본능적으로 느끼기에 사람들은 그 무언가를 마음 속으로 만들어내어 종교로 삼는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현실에서 그 절대자가 나를 지켜주는 것을 경험하지 못한다면 그저 또다른 불안 뿐일 것이다.

나는 그 무언가를 나를 지켜주시는 하나님으로부터 찾았다.
삶 속에서 사회조차 막을 수 없는 절대자의 보살핌에 대한 믿음, 그리고 그 믿음을 강화시켜줄 신비롭고 실제적인 경험들이 이 경쟁사회의 급류 속에서도 감사와 만족이라는 것을 누릴 수 있게 해준다. 급류 안에 있으면서 동시에 있지 않은 것 같은 경험들이 삶 속에 나타난다.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사랑은 나라는 개체의 생존을 넘어서까지 하나님을 따르고자 하는 마음으로 이어질 것임을 느낀다.

3. 의자의 비유

의자에 앉아서 쉴때를 생각해보자.
우리는 의자에 앉을 때 의자가 나를 받쳐줄 것을 믿고 앉는다.
그리고 실제로 그 의자에 앉을 때마다 의자가 나를 받쳐준다는 것을 확인받고, 의자 위에서의 휴식을 점점 향유하게 된다.

우리의 삶은 생존과 실존에 대한 불안이라는 끊임없는 급류 속에서 시작되었다.
올라가는 도중에만 안심할 수 있고 멈추어 있으면 왠지 붕 떠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마치 엘리베이터 안과 같은 곳에서 말이다.
평안을 누리고자 한다면 결국 흔들리지 않게 우리를 받쳐주는 어딘가에 푹 기대고 앉아보아야 한다.

그때서야 우리는 편리함 이전에 존재해온 평안함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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